생성적으로 흘러 다니는 선의 리듬 (The Rhythm of Area, 비트리 갤러리 2023 전시 평문)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1. 실을 매체로 작업을 하는 윤정희는 어느 날 자신이 주로 다루는 재료인 실과 파이프 간의 형태적 유사성, 그러니까 가늘고 길며 간결하게 생긴 것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실과 파이프가 결합된 작품이 탄생했다. 두 물질의 접속으로 하나가 된 이 작품은 기존의 실, 파이프와는 다른 색다른 존재로 탈바꿈되어 등장한다. 서로 간에 차이를 지닌 것들이 차이 자체를 내재화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색이 다른 실들이 동일한 파이프의 외관을 감싸면서 배열을 달리하거나 색과 색의 차이를 노정하면서 전개되는 식이다. 실은 털이나 솜, 나일론 따위를 가늘고 길게 자아내어서 꼬아 만든 물건을 말한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따뜻하다. 반면 파이프는 금속으로 만들기에 무겁고 견고하며 차갑다. 실과 달리 단단한 물성과 스스로 자립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인공의 물체, 오브제인 파이프는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강(스텐) 등으로 이루어진다. 작가가 사용하는 파이프가 그것들이다. 한편 액체나 기체 따위를 수송하는 데 쓰는 관인 이 파이프, 배기관은 라인을 형성하면서 이어지기에 일정한 단위로 부품화되어 만들어진다. 작가는 일정한 크기의 파이프를 구입해 그 피부 위에 색 실을, 마치 옷을 입히듯이 감싼다.
 
2. 실처럼 생긴 파이프를 이용해 실이 지니지 못하는 견고한 물성을 대신하고 차갑고 견고한 파이프 표면을 실의 따스함으로 위장, 새로운 피부로 성형해 준다. 그로 인해 실은 공간에 직립하거나 벽에 부착되어 부풀어 오르거나 바닥에 융기되듯이 솟아 자리하면서 입체 내지 딱딱한 물질이 되어 자립한다. 기존의 섬유 작업은 섬유 자체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불가피하게 바닥을 향해 늘어지고 쳐지거나 흐느적거리는 성질을 지닐 수밖에 없다. 반면 작가는 그러한 천 작업의 보편적 상황에서 벗어나 섬유를 견고한 지지체에 의해 지탱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파이프가 필요했던 것이다. 조각이 흔히 3차원의 공간에 자립하는 단단한 물질의 연출이라면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시말해 조각의 존재론적 조건을 탈피하기 위해 부드럽고 가변적인 재료를 차용하고 그런 차원에서 천이 적극적으로 다루어진 것이 1960년대 이후 현대조각, 나아가 설치작업의 중요한 추이였다. 조각을 조각이게 하는 불가피한 조건의 하나인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기도 하다. 동시에 바닥이나 좌대로부터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되어가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윤정희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늘어지는 섬유/실의 성질을 단단하고 반듯하며 견고한 것으로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일률적으로 벽에 걸리는 모드에서 벗어나 바닥과 공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파이프라는 오브제다. 그렇게 파이프의 몸통을 빌어 그 피부에 기생해 나가는 전략을 시도한다. 작가는 공업용 알루미늄 파이프를 구입 한 후 여러 개의 파이프 표면을 천연섬유로 감고 이를 접착제를 사용해 합판에 부착했다. 완벽하게 봉인된 실로 인해 파이프는 거대한 실 기둥이 되었다. 또는 벤딩 처리가 된 스테인리스강(스텐) 파이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코너가 구부러진 이것은 벽에 부착되거나 바닥에 놓일 경우에 사용한다. 합판 작업은 그림처럼 벽에 걸리고 그 외의 것은 설치화 된다.
 
3.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 실로 감싸여진 동일한 크기의 원통형 물체는 여러 개가 도열되면서, 집적되면서 평면의 회화처럼 인식되거나 바닥이나 벽면에 가설되어 조각/입체가 되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파이프의 피부를 점유하고 있는 천연섬유, 실은 종류에 따라 다양한 색의 느낌을 안겨준다고 작가는 말한다. 따라서 실의 종류에 따라 전달되는 색의 감각, 느낌에 따라 실/색을 선택한다. 정작 작품에는 지극히 제한된 색을 선택하는데 그에 따라 화면은 절제되고 매우 단순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화면은 두 가지 색/톤으로 한정되어있고 이 둘의 ‘이상적인 어울림’의 지점을 적극 모색하면서 선과 리듬을 만든다. 한편 작가가 다루는 실/천은 색을 지닌 물질이자 동시에 촉각적인 성질을 지녔다. 사실 모든 시각이미지는 촉감적인 유혹을 내재하고 있다. 시각은 촉각적이기도 하다. 섬유의 촉각적 성질을 보다 극대화하고 있는 실(색) 기둥은 공간 속에서 견고하게 자립하고 있다. 색 기둥은 도열하면서 리드미컬하게 흐르거나 진동한다. 잔잔하고 고요하게, 차분한 색채 안에서 절제된 구성 안에서 ‘명랑한 색상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온화한 감성과 온기의 체험을 안겨주면서 흡사 겨울철 실내공간 속의 라디에이터처럼 자리하고 있다.
 
4. 가느다란 실은 스스로 설 수 있거나 덩어리나 체적을 지닐 수 없기에 견고하고 볼륨감을 지닌 기존의 오브제, 레디메이드인 파이프의 몸체에 기생해 나간다. 실은 둥근 몸통의 피부를 감싸면서 본래의 피부를 지우고 새로운 질감, 물성, 낯선 색채로 변신을 거듭한다. 이러한 물질의 전이, 변태는 다분히 초현실주의적인 방법론을 떠올려 준다. 예상치 못한 물질의 변이 내지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적이며 이 둘의 관계는 계속해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표와 기의가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는 데리다의 말처럼 객관화되고 고정된 기의는 없고 다만 지속적으로 바뀔 뿐이다. 아울러 이 작업은 항상 복수의 파이프가 집적, 배열되면서 공간을 일정하게 채워나간다. 하나의 단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하나이자 다수이고 다수이자 복수이며 개체이자 전부로서 의미를 지닌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차례대로 나열된 수열구조를 보여주는 원통, 파이프의 궤적은 다만 모종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기하학적 색면이 생성적으로 흘러 다니는 듯한 묘한 착시가 조성된다. 그것들이 자아내는 선, 흐름의 교차. 반복, 연속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 중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가능한 부수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거둬낸 미니멀한 형식, 단순한 구성을 조율한다. 중성적인 톤의 색채와 직선 또는 직선들의 엇갈린 배치로 이룬 사선의 배열로만 이루어졌는데 이 정적인 화면/공간에 조용한 흐름을 조성하는 선들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결국 저 선(파동, 율동, 결, 흐름 등)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는 생각이다.

호흡의 덩어리 (유기적 레이어, 갤러리도스 2015 전시 서문)

최주연 (큐레이터) 

  윤정희의 작업은 가느다란 동선(copper wire)으로 고리(loop)를 만들어 계속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도구 없이 온전히 작가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동선은 구리로 이루어진 전선이지만 기존의 쓰임새에서 벗어나 오브제의 미묘한 움직임을 표현하고 작가 특유의 예민한 듯 섬세한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재료로 선택된다. 형태의 변형이 비교적 자유로운 유기적인 특성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형태유지가 잘 되는 모순적인 재료의 특징으로 인해 그녀가 의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조형물이 탄생한다. 레이어(Layer)가 층층이 겹쳐지면서 작가의 손끝에 의해 탄생한 덩어리들은 증식되면서 차가운 금속선에서 점차 포근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작가는 결과가 아닌 과정(process)의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따라서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모하는 과정이 사물의 본질에 내포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고정되지 않고 언제나 변화할 여지가 있다는 관점은 윤정희의 작업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도출된다. 그러기에 새롭게 태어난 덩어리들이 감상자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좀처럼 형상을 만들기 어려운 것 같은 얇은 동선으로 유기적으로 엮어진 오브제들은 감상자가 가진 내면의 심상을 건드리며 다양한 반응을 가져다준다. 마치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증식하는 원시적인 생명체같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로부터 발아되어 나오는 씨앗이나 열매의 형상이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가 결과물에 대해서 얻고자 하는 생명력에 대한 고민은 오브제들이 어떤 곳에 어떻게 놓일지에 대한 부분으로 이어진다. 조형적으로 어떻게 설치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감상자의 해석을 달라질 수 있으며 작가는 최종적으로 바닥에 그냥 놓아두는 가장 자연스러운 설치방법을 선택하고 생명의 숨을 마저 불어넣는다.

  윤정희는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변화 안에서도 새로운 결합규칙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민과 시도를 병행한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작품은 조형적으로 크게 두 가지의 형태로 나뉜다. 오브제의 정 가운데를 중심으로 층층이 쌓여진 형태들과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 결합되고 확장해나가는 작은 형태들로 이루어진다.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형태를 찾기 위해 수 없이 많은 동선들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고 이어나가기를 반복한다. 어떤 방식으로 덧붙여 나갈 것인지 혹은 한 피스의 크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자유로운 형상의 개체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동선을 어떻게 조형적으로 변형시키는가에 따라 그녀만의 창조물이 탄생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오브제들을 친근하게‘덩어리’라고 일컫는다. 작가는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한 형태보다는 섬세하고 자연스러움 안에서의 미묘한 변형을 추구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작업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섬세한 동선은 다른 어떤 재료보다 윤정희의 작업 성향을 잘 대변해준다.

  생명감조차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동선들에 작가는 손끝으로 숨을 불어넣는다. 윤정희가 보여주는 특유의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감상자에게 작품과 교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몸짓이 된다. 그녀가 보여주는 반투명한 조형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또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포근한 생명력을 얻은 덩어리들은 보는 이에게 동선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잊게 할 만큼 내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원시적인 체온을 느끼게 해준다. 동선이란 재료의 다양한 변용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예술이 가진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다시금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유기적 레이어 (갤러리 도스 2015 전시 평문)

이선영(미술평론가)

  ‘유기적 레이어’라는 전시부제로 열린 윤정희의 개인전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동선으로 성글게 짠 둥그스름한 구조물들이 편재한다. 전시장 바닥에 벽에 그리고 귀퉁이에 듬성듬성 놓인 것들에는 새봄을 맞아 생명이 부글거리며 발생하는 느낌으로 가득하다. 빵이 효모균에 의해 부풀어 오르듯이, 팽팽하게 부풀다 못해 그 위에 또 다른 촉수를 뻗는 움직임에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인디안 핑크의 온기를 품은 색선들은 한 아름, 또는 한바구니 정도 부피로 한정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에너지와 움직임이 내재해 있다. 페이지를 넘기며 볼 수 있는 전시도록에는 덩어리들이 하나 둘 증가하는 방향을 지시한다. 공간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윤정희의 작품에는 시간성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덩어리 뿐 아니라, 동질이상을 이루는 일련의 것들은 증식하는 것 같은 환영을 만든다. 하나의 세포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을 포함한 얼마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번성했는가를 생각하면, 세포들의 증식 이미지에는 시원의 풍경을 목도하는 것 같은 감흥이 있다.

  세포 같은 모습을 한 덩어리들은 생명의 축소판으로, 생명의 먼 기원을 알려주는 원시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거대 유기체보다 환경변화에 더욱 유연하게 반응한다. 윤정희의 작품 속에 있는 무성생식의 이미지는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생명의 한 양상이다. 도미니크 바뱅은 [포스트휴먼과의 만남]에서 무성생물을 완벽한 불멸의 생명체로 본다. 이들에게 생식은 세포 분열만으로 이루어지고 분열을 통해 생겨난 두 개체는 완전히 똑같으므로 하나의 개체가 성장과 번식을 거듭하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 생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클론은 인공생명에도 해당된다. 물론 그것은 발전된 생명공학을 통해서 체액 한 방울로 정체성과 운명이 결정되는 음울한 SF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장황한 기계장치 등이 동원되곤 하는 현실적 움직임보다는 잠재적 움직임이 더욱 효과적이고 풍요롭다. 미술의 가장 큰 장점인 가시성이 어떤 한계로 작용할 수 있듯이, 미술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동성은 그 반대로 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동성은 전후좌우의 함축성을 직관, 또는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금속선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들은 숨 쉬고 꿈틀대는 느낌이지만, 덩어리들이 놓인 방식은 자연스럽지 않다. 전시장 바닥에는 30개의 덩어리가 5x6열로 배치되어 있다. 하얀 바닥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하얀 좌대들은 핑크색 덩어리를 어디선가 떼어온 샘플같은, 가령 분석을 위해 유리판에 한 방울 떨어뜨린 점액질 같은 모습이다. 유기체 특유의 전체와 부분의 관계 대신에, 기계적인 나열이 두드러진다. 그것들은 각자 자족적인 단자(monad)들이다. 윤정희의 작품은 여성의 섬세한 솜씨로 재현된 유기체적 자연을 넘어서, 유기체가 처해있는 새로운 상황을 포함한다. 이 새로운 유기체는 부분 속에 전체가 담겨있으며, 전체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중심/주변의 관계에 바탕 하는 유기적 전체는 억압적일 수 있다. 억압을 낳는 위계적 관계를 해체하고 ‘자연은 재발명’(다나 해러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재발명을 위해서 다나 해러웨이처럼 사이보그까지 갈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비전이 경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은 중요하다. 경계의 침범이나 와해라는 사이보그 담론의 주제가 자연이라는 ‘생명의 그물’(프리초프 카프라)처럼, 수직적 계층에서 수평적 연결망으로의 전환이라는 패러다임까지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윤정희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수평적 배열은 세대에서 세대에 걸쳐 유전자를 교환하는 수직적 방식이 아니라 같은 세대 내에서 옆에 있는 것들과 직접 유전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무성생식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같은 규칙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유기적 총체성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해체한다. 어디에도 강조점이 찍혀있지 않은 무관계성, 즉 미니멀리즘적 나열방식이 보여주는 것 또한 그것이다. (가상적)움직임은 한 방향으로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중심도 텅 비어 있다. 또는 각 층들의 궤도의 중심은 각기 다르다. 거기에는 핵심과 주변의 관계가 아니라, 점차 커지는 층들의 계열만이 있다. 여러 겹의 층을 이루는 표면들은 선으로 엮여있는 망들이다. 선으로 엮인 망들의 구조에는 안으로 접혀지거나 밖으로 펼쳐지는 쌍방향의 움직임이 있다. 최소의 부피에 최대의 표면을 함축하는 구조이다.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야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로 어떤 훌륭한 건축가는 일교차가 큰 아프리카 기후를 이용하여 복잡한 망에 물이 맺히는 구조물을 발명하기도 했다. 망은 최대한 펼쳐진 표면을 의미하며, 생명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망으로 이루어진 껍질들은 가운데를 반투명하게 보여줄 뿐이며 층이 더해질수록 불투명성을 더욱 커질 것이다. 그것은 극도의 투명성을 견지해왔던 과학조차도 불투명해지면서 예술을 닮아가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경향은 단지 인식론상의 무정부주의라기보다는 새로운 실재에 대응하는 겸허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수제비 떼어내듯 덩어리진 것들은 동일한 규칙 속에서도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며, 안팎의 공간관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덩어리들은 그 무엇으로도 자라날 수 있는 만능세포같은 잠재력을 가진다. 비어있음이 가변성을 극대화한다. 비어있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 빈 중심으로부터, 또는 여러 개의 중심으로부터 다양한 유희가 가능하다. 질서 정연하게 바닥에 놓인 것들은 엔트로피의 측면에서 보자면 최대한의 잠재력을 가진다. 생명은 엔트로피의 증대에 대항하며 자기 보존과 조절을 위한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미세한 변화를 축적시켜 진화한다. 그것들은 어떤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변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한다. 다양한 곡면을 형성하면서 복잡다단하게 출렁이는 망들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덩어리들은 2012년의 전시 ‘씨앗으로부터’처럼 씨앗과 같은 속성을 가진다. 그 밖에 ‘되어가다’(2011), ‘불완전함의 연속’(2009) 같은 근 몇 년 동안의 전시부제에는 작가가 현실성보다는 잠재성에, 완결보다는 과정에, 존재보다는 되기에 방점을 찍어왔음을 알려준다. 이번 ‘유기적 레이어’ 전에서도, 공기만을 품고 있는 듯한 망구조물은 본질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과정 중에 있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성은 결핍이기 보다는 미지의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바닥에 놓인 것들이 중력에 몸을 싣고 옆으로, 위로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선반위에 죽 올려놓은 것들은 바닥에서 일어나 좀 더 역동적인 방향성을 가진다. 그 역시 바닥에 설치한 작품들처럼 시간을 공간화, 또는 공간을 시간화 한다. 그것들은 시공간의 축을 따라 확장하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여 적응, 또는 변화하는 생명체처럼, 이런저런 방식으로 반응하는 덩어리들은 보이지 않는 주변까지 포함한다. 덩어리들은 잔잔한 진동으로부터 울뚝불뚝한 움직임까지 다양한 진폭을 가진다. 그것은 긴 겨울이 지나고 만물에서 진행 중인 생명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물질 뿐 아니라 정신 속에서도 발생한다. 상상력 또한 발아하고 자라고 번성하며 때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맞은편에는 선적으로 증식하는 작업 스타일이 드로잉으로 표현되어 있다. 거기에는 형태와 더불어 의미가 생성되는 방식이 도해된다. 형태변화를 야기하는 새로운 결합규칙들은 의미가 변화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몇 안 되는 요소의 조합으로 최대한 다양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언어적이다. 단순함이 단지 단순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포적 다양성과 외연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선반과 바닥에 놓인 덩어리들은 3차원 상에 구현된 드로잉이라 할 수 있다. 3차원 상에서 여러 번 중첩된 곳은 진하게 보인다. 형상은 매번 중층 결정(overdetermination) 된다. 처음과 끝은 불확실하지만 자체의 동력에 의해 하염없이 나아가는 선들은 그 자체가 생성의 이미지이다. 윤정희의 작업에서 생성의 이미지는 구조와 밀접하다. 일련의 패턴이 감지되는 덩어리들은 움직이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손을 뜨개바늘로 삼아 엮은 망들은 반복 속에서 결합의 규칙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여기에서 여성의 몸이라는 매개는 기계적인 것을 포함한다. 여성은 자연적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자연은 기계적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이 수많은 실험을 진행해왔듯이, ‘욕망하는 기계’(들뢰즈)의 단면들은 횡단적 접속을 극대화한다. 금속으로 짜여 진 망이라는 작품의 본질적인 형태는 예술 또한 자연이 아니라 인공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안팎의 구별이 모호하고 뼈이면서도 살처럼 보이는 덩어리들은 경계의 문제를 제기한다. 덩어리들은 위아래를 바꾸거나 안팎을 까도 항상성을 유지할 만큼 유연하다. 펠릭스 가타리가 [카오스모제]에서, 과학기술, 생물학, 컴퓨터 기술, 정보통신, 매체의 세계는 매일 우리의 정신적 좌표들을 한층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말했듯이, 오늘날 경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가장 큰 동인은 과학기술이다.

  인간이나 주체성은 더 이상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주체성을 생산하고 포획하고 풍부화 하고, 이제 돌연변이적인 가치 세계와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발명해 가는가’(가타리)가 중요하다. 촉촉하면서도 따스해 보이는 덩어리들은 두개골과 가슴 속에 자리한 기관 뿐 아니라, 세포에서 어머니-지구까지 생명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은유로 확장된다. 윤정희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오랜 노동이자 예술이기도 했던 뜨개질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생명 및 인공생명을 포괄하는 네트워크의 비유 또한 강력하다. 기술은 과거의 딱딱한 외관을 버리고 생명과 보다 ‘자연스럽게’ 접속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윤정희의 작품을 여성, 자연, 전통, 공예 등으로 묶어 놓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 반대로, 그녀의 작품은 첨단적인 것일수록 근본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생명의 그물망 (씨앗으로부터, 송은아트큐브 2012 전시 서문)

이선영 (미술평론가)

  윤정희의 작품은 차가운 금속 선으로 짜여 진 구조물이지만 부글거리는 듯한 뜨뜻한 생명의 기운이 있다. 그것들은 건강한 생명이나 이상적인 예술처럼 견고하면서도 유연하다. 그것들은 현미경 아래의 미생물체 또는 눈도 색도 없는 심해의 생물체처럼 보이기도 하며, 효모에 의해 잘 부풀려진 빵이나 잘 말려있는 솜사탕처럼 탐스럽기도 하고, 꼬마의 상상 속 유령이나 할머니가 처마 밑에 걸어둔 저장 야채 같기도 하다. 미세한 주름들로 가득한 그것들은 생명이 펼쳐지는 생성의 이미지와 다시 접혀지는 소멸의 이미지가 동시에 있다. 생성이든 소멸이든 변화 중인 중간 단계 같은 모습이다. 생성이나 소멸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주기가 아니라, 변형이나 변태의 과정 중에 있다. 그 점에서 윤정희의 작품은 유기체적이다. ‘씨앗으로부터’라는 전시부제는 생명을 출발시키는 원초적 기질과 에너지를 응집시키려는 의도를 예시한다. 안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안팎이 구별되지 않은 단일 표면들의 변주는 유기체 특유의 주름들로 가득하다.

  유기체의 주름이 새겨진 씨앗은 들뢰즈가 [주름]에서 말하듯이, 러시아 인형처럼 무한히 하나가 다른 하나에 감싸여 있다. 최초의 개체는 때가 되면 자신의 차례에 자신의 고유한 부분들을 펼치도록 호출된다.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가 죽었을 때 이 유기체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말아 넣어지고 되 접히게 된다. 씨앗으로서의 작품은 유전자에 의해 입력된 정보에 따라 순차적으로 펼쳐질 여러 층위들을 공시적으로 보여준다. 공중에 매달려 있고 선반 위에 놓여 있고, 벽에 핀으로 고정되기도 하는 등, 작품마다 배열 방식은 다르지만 코바늘 뜨기처럼 짜여 지는 구조라서 대칭형을 기본으로 변주 되는 식물 형태가 감지된다. 층층이 겹쳐지는 구조가 형태와 부피를 만든다. 학창 시절 청계천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얇은 동선은 전기를 통하게 하는 부품으로, 빳빳해서 형태가 잡히면서도 부드럽게 엮일 수 있다. 이 재료를 작가는 2009년 첫 개인전 때부터 계속 사용해왔다.

  섬유가 얽히는 방식이 비슷하여 코바늘 뜨기 같은 느낌이지만, 바늘 없이 손으로만 한다는 차이가 있다. 결합체들이 만들어내는 형태들은 기하학과 생물학을 교차시킨다. 첫 개인전에는 수편기를 사용하여 평면으로 판을 짜고 이를 다시 입체로 설치하였는데, 이후부터는 안쪽으로 동글동글하게 말리는 식으로 짜나갔다. 수직 수평의 좌표계를 벗어난 그것은 만물이 비롯될 내재성의 판이 된다. 인체의 형상이 있는 이전 작품에 비해 이번 전시작품은 보다 추상적이다. 씨앗이라는 은유를 통해 보다 원초적인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뭉글뭉글 덩어리진 형태는 어떤 감정 상태와 관련은 되지만 특정한 감정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형태 또한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어디쯤에서 끝난다는 것은 확정되지 않는다. 원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예정된 궤도를 빗나가는 여정은 생물의 발생으로 친다면 돌연변이나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이 역시 유전자가 재조합 되어 생겨난 새로운 유전적 구조처럼 형성될 뿐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병리이든, 생명의 과정이라는 기본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손으로 금속선을 짜는 과정은 씨앗이 발아하여 성체가 되는 것처럼 점점 커지는 단계를 공유한다. 동질의 표면이 중첩되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배의 발생과 유사하다. ‘한 올 한 올 고리를 엮어가며 형태를 생성해 나간다’는 방식을 통해, 존재보다는 되기에 방점을 찍는 방식은 여전하다. 인체가 등장하는 2009년 개인전 작품에는 머리를 몸 깊숙이 박고 움츠려 있거나 누더기처럼 기워진 인체 껍데기 형태를 통해 보다 직설적인 감정 상태를 전달했다면, 이번 전시작품들은 이전보다 모호한 형태지만 거기에 내재된 감성은 더 포괄적이다. 그러나 다섯 개의 주머니가 안쪽으로 겹쳐져 있는 이전 작품 [되어가다](2009)나 인체 형상 안에 또 다른 주머니들이 마치 내장처럼 보이는 작품 [내 안으로 들어가기](2007)에는 지금의 방식이 예견되어 있다. 윤정희에게 존재가 아닌 되기는, 함입, 겹침, 접힘, 되접힘같은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홀씨주머니 같은 것들이 선으로 이어져 군집을 이루고 매달린 작품 [becoming](2010)에는 요즘 몰두하는 작품과 동질이상의 관계를 가질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 겹으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듯한 형상들은 원형질적인 생명력을 가진다. 부피가 큰 것은 매달리고 작은 것들은 선반에 죽 배열된다. 그것들은 미술품이 놓여 질 고정된 자리를 벗어나 벽과 천정, 바닥 전체를 총체적인 생태계로 삼아 자리 잡는다. 놓여 진 작품들은 기저 면에서 발생하거나 사라지는 느낌을 주며, 매달린 작품은 거미나 누에가 만들어놓은 섬유질 덩어리처럼 보인다. 도처에 편재하는 기관 없는 신체들은 또 다른 무엇과 접합하여 변신하기를 욕망한다. 성글성글해 보이지만 묵직하게 중력을 반영하는 형태들은 농축된 작업의 밀도를 가늠하게 한다. 발생 중인 동식물 뿐 아니라, 해체 중인 기관, 구름 같은 모습은 중심에 레이어가 집중되고 바깥으로 갈수록 밀도가 흐려지며 융통성 있는 외곽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온다.

  연속되는 하나의 선으로 짜여 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선이 얽히는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통일된 구조를 이룬다. 느슨하게 뭉쳐있는 섬유 같지만 하나의 선으로 짜여진, 일련의 순서와 방법이 관철되어 있다. 작품 형태의 원형으로 삼는 유기체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이 구조는 자율적으로 통제되는 체계적 전체를 이루지만, 변형의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이 유기체는 작품이라는 유기체와 중첩된다. 반투명할 만큼 성글게 짜여 지기 시작하지만, 연장되는 운동을 통해 서로 다른 밀도로 성장해 간다. 그리하여 금속성 질료는 생명에 버금가는 질을 획득한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반복되는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항상성의 유지와 변이라는 생명의 기본 과정과 중첩된다. 또한 작품들은 생명처럼 자유를 향해 도약하려 한다.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생명이란 단순한 물리적 존속과는 달리,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정의 한다.

  그에 의하면 생명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독창성을 말한다. 복잡한 구조의 결절점 내지 교차점이 가득한 유기체(작품)은 결코 완결되지 않고 자신을 넘어서 창조적으로 전진한다. 그것은 자연처럼 시간과 공간을 연장하는 도식을 전제로 한다. 공간의 연장성은 연장의 공간화이며, 시간의 연장성은 연장의 시간화이다. 시공간의 얽힘 속에 유기체의 표면과 이면은 통합된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유기체 철학’을 통해 실재를 역동적인 과정의 기술로 대체한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는 하나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위상으로부터 위상으로의 성장이 있으며, 통합과 재통합의 과정이 있다. 최종적으로 완결된 느낌이 만족이다. 세계를 실재가 아닌 과정으로 보는 관점은 시간과 공간의 연장성(extensiveness)을 내포한다. 동시적 세계는 연장적 관계의 연속체로 파악된다. 연장적 연속체란 전체와 부분의 관계, 공통부분을 갖는 중복 관계, 접촉 관계, 그리고 이러한 원초적 관계에서 파생된 존재들의 복합체를 말한다.

  이 연장적 연속체는 현실 세계로부터 도출된 사실을 표현하기 때문에 실재적(real)이다. 유기체 철학에서 연장성은 세계 내의 유기체들의 형태적 구조가 순응하는 보편적 형식이다. 연속된 체계가 집적되어서 생기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구조를 가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본질과 현상, 실재와 과정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로 만든다. 이러한 작품들은 철학사의 대표적인 대조 범주인 발생과 구조를 모순 없이 연결시킨다. 장 삐아제는 구조와 발생이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고 본다. 발생이란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의 단순한 전이이지만, 이러한 전이는 항상 약한 구조를 강한 구조로 유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형성적 전이이다. 구조는 선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형들의 체계이다. 윤정희의 작품에서 반투명한 구조들은 내부의 공동(空洞) 을 보여주며, 공간들 사이의 밀도 차이가 잠재적인 운동감을 변이 가능성을 예시한다.

  규모와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대적 시작을 찾기는 힘들다. 변형의 사슬은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우며 뻗어 나갈 뿐이다. 변화 또한 알고리즘같은 규칙에 따르며, 불연속적인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올이 풀려남으로서 생기는 연쇄 고리의 단절은 와해라는 재앙을 가져온다. 창조적 무질서를 향해 엔트로피를 늘려나가기는 하지만, 불모의 해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둥글둥글 응집력 있는 형태들은 닫혀있으면서도 열려있다. 그것들은 빈틈없는 존재의 그물망을 이루면서도 포용력과 가변성이 있다. 변형은 차이를 통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이나 몸 같이 완전히 코드화 할 수 없는 것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새로운 변형 규칙의 고안이다. 이 새로운 변형규칙의 고안에서 주름과 구름은 주요한 모델이 된다. 주름과 구름의 모델을 통해 문명세계를 강압적으로 규정하는 격자는 자유로운 그물망으로 변모한다.



윤정희  (b.1978)
 
Yoon, Junghee (b.1978)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부 섬유예술전공 박사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섬유예술전공 석사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장식미술과 졸업
EDUCATION
Ph.D.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M.F.A.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B.F.A.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개인전
2023 The Rhythm of Area, 비트리갤러리, 서울, 한국
2022 Three Dimentional Warmth, LG U+갤러리, 서울, 한국
2022 공간, 따뜻한 구조들, 이화아트센터, 서울, 한국
2021 따뜻한 구조들, 갤러리밈, 서울, 한국
2019 겹덩어리, 이화아트갤러리, 서울, 한국
2015 유기적 레이어, 갤러리도스, 서울, 한국
2012 씨앗으로부터, 송은아트큐브, 서울, 한국
2010 비커밍, 한전아트센터갤러리, 서울, 한국
2009 불완전함의 연속, 토포하우스, 서울, 한국
SOLO EXHIBITIONS
2023 The Rhythm of Area, B-tree Gallery, Seoul, Korea
2022 Three Dimentional Warmth, LG U+ Gallery, Seoul, Korea
2022 Space, Thin Lines, Warm Structures, Ewha Art Center Seoul, Korea
2021 Thin Lines, Warm Structures, Gallery Meme, Seoul, Korea
2019 Layer-Mass, Ewha Art Gallery, Seoul, Korea
2015 Organic Layers, Gallery DOS, Seoul, Korea
2012 From a Seed, SongEun ArtCube, Seoul, Korea
2010 Becoming, KEPCO Art Center, Seoul, Korea
2009 A Series of Incompleteness, Topohaus, Seoul, Korea
프로젝트
2020 윤정희 X 에이치픽스 도산 2, 서울, 한국
2020 윤정희 X 에이치픽스 도산 1, 서울, 한국
PROJECT
2020 YOON JUNGHEE  X  HPIX DOSAN 2, Seoul, Korea
2020 YOON JUNGHEE  X  HPIX DOSAN 1, Seoul, Korea
주요 그룹전
2024 Lightwave Palette, 도잉아트, 서울
2024 스틸 플로우, 포항시립미술관, 포항
2024 유연하고 견고하게, 윤정희 조원아 2인전, 롯데백화점 본점 애비뉴엘, 서울
2024 Balanced Vol.6, 비트리 갤러리, 서울
2023 Everyday Rainbow, 셀렉티드 마롱, 서울
2022 공예, 낯설게 하기, 롯데 에비뉴엘 아트홀, 서울
2022 밀라노 한국 공예전, 펠트리넬리, 밀라노
2021 Living with Art, 갤러리 카린, 부산
2021 Spring Selection, 갤러리 에스피, 서울
2021 아트부산, 벡스코, 부산
2020 시소, 에이벙커, 서울
2019 나부끼듯 속삭이듯, 윤정희 정유미 2인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스페이스 유, 성남
2019 오독의 즐거움, 스페이스 55, 서울
2019 Pick me : 재료사용법, 경기도 미술관, 안산
2018 아트 아시아, 킨텍스, 고양
2017 경기 아트 프리즘, 경기도 미술관, 안산
2017 크래프트 클라이맥스, 경기도 미술관, 안산
2015 평+안, 더페이지갤러리, 서울
2015 썸머 러브, 송은 아트 스페이스, 서울
2014 공예트랜드페어 주제관, 코엑스 A홀, 서울
2013 신화와 전설,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고양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24 Lightwave Palette, Dohing Art Gallery, Seoul
2024 Steel Flow, POMA(Pohang Museum of Steel Art), Pohang
2024 Duo Exhibition, Junghee Yoon x Wona Cho, Lotte Gallery, Seoul
2024 Balanced Vol.6, B-tree Gallery, Seoul
2023 Everyday Rainbow, Selected Malong, Seoul
2022 Craft, Defamiliarization, Lotte Avenuel Arthall, Seoul
2022 Milan Korean Craft, Feltrinelli, Milan
2021 Living with Art, Gallery Carin, Busan
2021 Spring Selection, Gallery SP, Seoul
2021 Art Busan Fair, Bexco, Busan
2020 SeeSaw, A Bunker, Seoul
2019 Duo Exhibition, Junghee Yoon x Yoomi Chung, Space U, Sungnam
2019 The joy of misreading, Space 55, Seoul
2019 Pick me,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2018 Art Asia, Kintex, Goyang
2017 Kyeonggi Art Prism,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2017 Craft Climax,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2015 평+안, The Page Gallery, Seoul
2015 Summer love, Songeun Art Space, Seoul
2014 Craft Trend Fair, Coex, Seoul
2013 Myth and Legend, Aram Art Gallery, Goyang
주요 소장처
경기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시 박물관과 등
 SELECTED COLLECTION
GMOMA(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MOMA Government Art Bank, Seoul City Museum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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